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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잃어버린 10년’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 바이런 케이티와의 만남이 있기 전까지의 10년을 나는 이렇게 불렀다.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안으로는 오랫동안 곪아 있던 상처들이 걷잡을 수 없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고통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던 혼란의 시기. 쓰나미에 떠밀려 오랫동안 표류하며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 두려움과 불안에 오랫동안 힘들어하던 내게 케이티의 ‘작업’은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처음 바이런 케이티의 책 《네 가지 질문》을 어느 학부모에게 선물 받았을 때, 나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작업’이라고 불리는 네 가지 질문은 좀 어렵게 느껴졌다. 책을 미처 다 읽지도 못하고 덮어 둔 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 학부모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케이티가 오프라 윈프리의 소울 시리즈에 나와서 ‘작업’을 하는 동영상에 대한 얘기를 듣고는 문득 궁금해졌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그 동영상을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그때 내 안에서 터져 나온 한 마디, “유레카!!!” 나는 투명해 보이기까지 하는 깊은 눈의, 60대쯤 되어 보이는 케이티라는 여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무언가가 내 가슴속 깊은 곳을 울리고 있었다. 나는 흥분을 느꼈다. 그때부터 뭔가에 홀린 듯 ‘작업’ 동영상을 찾아서 보고, 또 보았다. 어느덧 케이티의 ‘작업’의 세계로 나는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2개월 후 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작업 스쿨(The School)에 참석해 있었다. (작업 스쿨은 1년에 2번씩 미국과 유럽에서 열리는 9박 10일간의 프로그램으로, 10일간 새벽부터 밤까지 케이티의 안내에 따라 전 세계에서 온 3~400명의 참가자들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함께 ‘작업’을 하는 심도 깊은 프로그램이다.)
스쿨에서 내가 경험한 것들은 음…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충격’, 그것도 뒤통수를 엄청 커다란 망치로 쾅 맞는 듯한 충격, 그것이었다. 그 중 하나가 생각난다. 나는 “우리 엄마는 너무 일찍 죽었다”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9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이 생각은 내가 오랜 시간 절대불변의 진실로 붙들고 살아온 생각이었다. 뒤바꾸기로 “나는 너무 일찍 죽었다”가 작업 파트너의 입에서 나온 순간, 내 머릿속엔 엄마가 돌아가신 그 순간부터 어린 나는 어떻게 죽었는지… 그동안 내가 나를 어떻게 죽이고 살아왔는지가 영화필름처럼 한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나는 오열했다. 엄청 큰 무언가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 멍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해 본 적 없던 생각, “나는 너무 일찍 죽었다”는 너무나 진실이었다. 나는 그 어린, 가여운, 한편으로는 대견한 나를 처음으로 만나고 다독여 주었다.
스쿨에서 만난 작업은 시작에 불과했다. 스쿨에서 돌아온 뒤 나는 오래된 믿음, 신념들, 나에게 고통을 주는 생각들에 대해 작업을 해 나갔고, 그에 따라 내 삶에 크고 작은 변화들이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찾아온 변화는 부모님과의 관계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새로운 부모님이 나타난 듯했다. 예전엔 잔소리만 일삼고, 온갖 일에 트집을 잡고, 사사건건 간섭을 하려 든다고 여겨지던 부모님이 어느 날부터 나를 사랑하는, 애정이 넘치는, 사랑하는 딸이 행여 어떻게 될까 노심초사하는 부모님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부모님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당신들 뜻대로 해 봐도 별 소용이 없으니 드디어 체념을 하셨구나, 나이가 드시니 이제야 내 숨통을 틔워 주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가만히 보니 부모님은 그대로였다. 같은 상황에서 예전과 똑같은 말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하는… 그런데 그 말과 행동들이 더 이상 예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기적이었다.
2년 뒤에 스쿨에서 다시 만난 케이티도 예전의 케이티가 아니었다. 첫 번째 스쿨에서 때론 냉정하고 차갑게 느껴졌던 케이티가 2년 뒤엔 더없이 친절하고 명쾌한 여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엔 케이티가 더 친절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케이티는 2년 전 스쿨에서와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하는 게 아닌가. 아, 그때 다시 한 번 작업의 힘을 느꼈다. 2년 동안 작업을 통해 내가 바뀌었던 것이었다. 그 뒤 다시 접한 《네 가지 질문》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시 읽어 보니 이렇게 명쾌할 수가 없었다. 구절들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닿았다.
그렇게 내 삶에서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간섭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나 자신에게 친절해지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정아, 괜찮아”라고 내 어깨를 토닥이기 시작했다.
작업의 여정이 항상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은 때론 고통스럽고, 두렵고, 힘들고, 밀린 숙제를 하는 것처럼 하기 싫어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때론, 작업에 저항도 해 보고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다른 길로 들어서 보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다시 작업으로 돌아와 있었다. 작업으로 나를 들여다볼 때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오롯이 만나는 경험은 그간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상쇄시키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엔 받아들임, 겸손함, 기쁨이 함께 했다.
작업을 접하는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내’가 작업을 하니 ‘주위 사람들’이 바뀐다는 것이다. 처음엔 의아해하던 분들도 작업 상담을 하면서 이 신기한 경험을 한 후에 놀라워한다. 정말 나 혼자, 내 생각을 들여다보니 가족을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이 바뀌네요, 하며 신기해한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1년간 말을 안 하고 살던 어떤 분은 작업 상담 4회 만에 어머니와 말을 하기 시작했고, 남편과의 갈등과 산후 우울증으로 무기력이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1,000,000(0-10 중에)이라고 표현했던 어떤 분은 8회 상담 때 작업할 거리를 못 찾겠다고 할 정도로 작업은 정말 빠르고 강력하다. 내 경험도 그랬고, 작업을 접하는 많은 분들이 들려주는 경험도 그러하고, 전 세계적으로 작업을 접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작업의 힘은 이토록 놀랍다. 나는 작업만큼 빠르게 실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도구를 아직 접하지 못했다. 내가 작업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작업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내 인생의 동반자’ 이자 ‘든든한 친구’이다. 그 작업과의 만남의 기회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갖게 되기를,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작업과의 인연이 닿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해 준 침묵의 향기 김윤 대표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바이런 케이티를 사랑하는 마음, 케이티의 작업이 더 많은 이들과 인연이 닿아서 한 명이라도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한 작업이라 힘든 작업이기도 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누구일까요?> 더유센터 대표 임수정 옮김
(침묵의 향기, 2013.11.15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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